수행 글
「자비는 마음에서 두려움을 없애고 세상을 온유하게 만듭니다」9월 20일 · 혜원스님우리는 사람을 대할 때 종종 두려움을 먼저 만납니다. ‘저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혹시 나를 이용하면 어떡하지?’ ‘내가 손해를 보면 어떡하지?’ 그래서 마음이 굳어집니다. 상대가 한마디만 날카롭게 해도 나도 모르게 날카롭게 반응하고, 작은 오해에도 마음의 문을 닫아버립니다. 그런데 불교에서 말하는 자비는 이러한 두려움에서 한 걸음 벗어나는 마음입니다. 자비는 단순히 착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에게만 베푸는 것도 아닙니다. 상대가 어떤 사람이든, 그 사람 역시 행복을 원하고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하나의 생명이라는 사실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비로운 사람은 사람을 볼 때 ‘나에게 무엇을 해줄 사람인가’보다 ‘저 사람도 얼마나 힘들었을까’를 먼저 생각할 수 있습니다. 물론 자비롭다고 해서 모든 것을 참고, 누군가의 잘못까지 받아주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거리를 두어야 하고, 분명하게 거절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에도 미움과 복수심으로 상대를 대하지 않는 것, 그것이 자비입니다. 자비가 마음에 자리 잡으면 신기하게도 남이 나를 어떻게 대할지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씩 줄어듭니다. ‘저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에서 ‘나는 어떤 마음으로 저 사람을 대할 것인가?’로 중심이 옮겨가기 때문입니다. 상대가 나에게 차갑게 대하더라도 내가 따뜻함을 잃지 않을 수 있고, 상대가 화를 내더라도 내가 함께 화를 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 순간 세상이 조금 달라집니다. 자비는 세상을 바꾸기 전에 먼저 내 마음의 두려움을 녹입니다. 그리고 두려움이 사라진 자리에는 온유함이 생깁니다. 오늘 하루 사람을 만나면서 한 번 이렇게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저 사람도 행복하기를 바라는 한 사람이다.’ ‘저 사람도 괴로움에서는 벗어나고 싶을 것이다.’ 그 마음으로 바라보면 같은 사람도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옛 가르침에서는 모든 중생의 행복을 위해 일하고, 그들을 사랑하겠다는 마음을 이야기합니다. 결국 자비란 거창한 일이 아니라 내 앞에 있는 한 사람을 조금 더 따뜻하게 바라보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는 소원을 들어주는 보석보다 귀합니다. 내가 모든 중생의 행복을 위해 일하고 항상 그들을 사랑하게 하소서. 옛날 티베트 고승 랑리 탕파가 쓴 <수심팔구의>의 첫 단락입니다. "모든 중생이 생사윤회에서 벗어나 열반의 경지에 도달하도록 제도하였다"라는 금강경의 경구와 일맥상통하는 구절입니다. 자비의 유일한 목표는 중생이 고통에서 벗어나 기뻐하는 것, 바로 중생의 해탈입니다. 그래서 자비심은 마음에서 두려움을 없애고, 굳어진 마음을 부드럽게 하며,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조금 더 온유하게 만듭니다. 오늘 내가 만나는 사람에게 조금 더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는 것이 바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자비의 실천입니다. 오늘도 근념하셨습니다. 마음에도 기지개를 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묵묵히 맡은 역할을 수행했던 몸과 마음에 쉼을 충분히 내어주세요. 호흡을 충분히 해주는 오늘을 만나시길 바랍니다. 부처님이야기를 만나 한줄 사경을 꾸준히 해주시는 여러분을 응원합니다. 그리고 잠시 쉬셨던 분들도 다시 마음을 내어보는 오늘을 만나시면 어떠실지요. 오늘도 감사합니다.
기다림이 생명을 소모하지 않도록9월 19일 · 혜원스님우리는 늘 무언가를 기다리며 살아갑니다. 시험에 합격하기를 기다리고, 좋은 소식을 기다리고, 여행을 기다리고, 조금 더 나은 내일을 기다립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지금의 삶은 잠시 멈춰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다리던 일이 막상 이루어지고 나면 어떻습니까? 기쁨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며칠, 몇 달이 지나면 다시 새로운 것을 기다립니다. 그렇게 우리는 현재를 살면서도 마음은 늘 미래에 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금강경의 첫머리를 보면 부처님께서는 특별한 곳에만 머물러 계시지 않습니다. 아침이 되면 가사를 입고 발우를 들고 성 안으로 들어가 탁발하시고, 돌아와 공양하시고, 발을 씻고 자리에 앉으십니다. 아주 평범한 하루의 모습입니다. 바로 그 모습이 우리에게 중요한 가르침을 줍니다. 깨달음은 특별한 순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살아가는 이 순간에도 깃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이 일만 끝나면 행복할 거야", "조금만 더 지나면 편안해질 거야"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미래만 바라보다 보면 오늘의 소중한 순간을 놓치게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어디에 계시든 그 자리에서 깨어 계셨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가족과 함께 있다면 그 순간을 온전히 살고, 일을 하고 있다면 그 일에 마음을 다하고, 차 한 잔을 마신다면 따뜻함을 느끼며 마시는 것입니다. 기다리는 동안에도 삶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니 좋은 날이 오기를 기다리기보다, 오늘의 하루를 좋은 날로 만들으세요. 몸은 어디에 있든 괜찮지만, 마음만큼은 늘 지금 이 자리, 자신의 본래 자리에서 깨어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근념하셨습니다. 언제 어디서든 지혜와 통찰력, 경계심을 잃지 않는 또렷한 상태를 유지해야합니다. 오늘도 평온한 오늘을 살아있음을 느끼는 순간을 보내셨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현재와 과거의 문제 중 무엇을 해결해야 할까요」9월 18일 · 혜원스님살다 보면 과거의 일과 현재의 일이 한꺼번에 마음을 괴롭힐 때가 있습니다. “그때 왜 그렇게 했을까?” “그 사람이 나에게 왜 그런 일을 했을까?” “그 일이 없었더라면 지금 내 삶은 달라졌을 텐데…” 우리는 자꾸 과거로 돌아가 답을 찾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이미 지나간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아무리 그때의 원인을 분석하고, 누가 잘했고 잘못했는지를 따져도 과거의 사건 자체를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현재의 문제입니다.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든,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현재의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선택하는 일입니다. 과거의 상처가 지금의 나를 힘들게 한다면 그 상처를 어떻게 돌볼 것인지, 같은 일이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살펴야 합니다. “인과는 과거의 일을 해석할 때가 아니라, 현재와…
「자비와 지혜」9월 18일 · 도반 운영진우리가 불교를 공부하면서 자주 만나는 말이 자비와 지혜입니다. 그런데 자비와 지혜는 멀리 있는 특별한 수행이 아닙니다. 사람을 대하는 마음과 하루의 일을 처리하는 우리의 태도 속에서 드러납니다. 자비란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대하는 것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만 따뜻하고,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는 차갑다면 그것은 아직 온전한 자비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자비는 차별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내 편과 네 편을 나누지 않고,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대립하지 않는 것입니다. 상대가 나에게 잘해주었기 때문에 잘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역시 나와 똑같이 행복하기를 원하고 괴로움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존재임을 알아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비로운 사람은 쉽게 미워하지 않습니다. 상대의 잘못을 무조건 감싸준다는 뜻이 아니라, 잘못은 잘못대로 바라보되 사람 자체를 미워하는 마음에는 머물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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