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께서 하루하루 전해주신 말씀을 모아두었어요.
7월 10일
부처님께서는 향기 없는 꽃을 비유로 드셨습니다. 아무리 꽃이 아름답고 빛깔이 곱다 하더라도 향기가 없다면 그 아름다움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이와 같이 아무리 좋은 말을 하고 훌륭한 뜻을 품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우리 삶에는 진정한 열매가 맺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좋은 사람이 되어야지", "남을 도우며 살아야지", "화를 내지 말아야지" 하고 수없이 다짐합니다. 그러나 말과 생각만으로는 인생이 바뀌지 않습니다. 씨앗을 손에 들고만 있다고 해서 열매가 맺히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씨앗을 땅에 심고, 물을 주고, 햇빛과 바람을 견디게 해야 비로소 열매를 얻습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루 한 번 따뜻한 말을 건네는 것, 화를 참으며 상대를 이해하려 노력하는 것, 작은 선행이라도 꾸준히 실천하는 것, 부모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가족들과 따뜻한 마음을 나누어야 합니다. 이러한 작은 실천들이 바로 인생의 씨앗입니다. 열매는 어느 날 갑자기 맺히지 않습니다. 봄에 씨를 뿌리고 여름의 뜨거움을 견딘 뒤 가을에 열매를 거두듯이, 우리의 선한 마음과 바른 행실도 시간이 지나면서 복이 되고 인격이 되고 행복이 되어 돌아옵니다. 사람들은 종종 "왜 내 삶에는 기쁨이 없을까?" 하고 묻습니다. 그러나 먼저 돌아보아야 합니다. 나는 어떤 씨앗을 심고 있는가? 나는 어떤 향기를 세상에 전하고 있는가? 탐욕의 씨앗을 심으면 괴로움의 열매가 맺히고, 분노의 씨앗을 심으면 갈등의 열매가 맺힙니다. 반대로 자비의 씨앗을 심으면 평화가 맺히고, 감사의 씨앗을 심으면 행복이 열매 맺습니다. 삶이라는 열매가 맺히는 날은 특별한 날이 아닙니다. 내가 오늘 한 선한 생각, 한마디의 따뜻한 말, 한 번의 자비로운 행동이 차곡차곡 쌓여 어느 날 내 삶을 향기롭게 만드는 바로 그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 미래의 행복만 기다리지 말고, 오늘 한 알의 선한 씨앗을 심어야 합니다. 말과 행동이 하나가 될 때, 삶은 꽃처럼 향기롭고 열매처럼 풍성해집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다 함께 서원해 봅니다. 좋은 말에 머물지 않고, 작은 선행이라도 실천하며 살겠습니다. 오늘 심은 선한 씨앗이 언젠가 아름다운 삶의 열매가 되게 하겠습니다. 오늘도 근념하셨습니다. 장맛비가 오락가락 내리는 가운데 오늘도 오늘의 마음으로 살아가셨으면 합니다. 지금 이대로 우리는 평온합니다. 숨만 쉬어도 괜찮은 오늘을 보내셨으면 합니다. 저는 여러분 덕분에 늘 정진하는 마음으로 오늘을 보냅니다. 이것이 가장 큰 선물입니다. 오늘도 귀한 날 보내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혜원스님
7월 9일
오늘도 하루를 시작하며 마음을 한 번 들여다봅니다. 법화경의 옷 속에 달린 보석 비유에서 가난한 사람은 자신이 보석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오랫동안 거지처럼 살아갑니다. 보석이 없어서가 아니라, 보석이 있는 줄 몰랐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이와 같습니다. 행복이 밖에 있다고 생각하고, 인정이 밖에 있다고 생각하고, 평안도 누군가가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마음은 늘 부족하고, 늘 불안합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마음 안에 이미 보석이 있다." 그 보석은 욕심이 아니라 자비이고, 미움이 아니라 사랑이며, 조급함이 아니라 평온함입니다. 오늘 하루는 밖을 바라보기보다 내 마음을 바라보는 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흔들릴 때에도 내 마음의 보석은 그대로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에도 내 안의 지혜는 사라지지 않았음을 알아차림 합니다. 힘들고 지칠 때에도 나는 보석을 잃은 사람이 아니라 잠시 잊고 있었을 뿐이다라고 마음으로 생각합니다. 마음에 집중하면 세상은 조금씩 달라집니다. 급할수록 한 번 숨을 고르고, 화를 낼수록 한 번 미소를 짓고, 불평이 올라올수록 감사 한 순간을 떠올려 지금의 이 힘든 마음을 흘려보내주어야 합니다. 그 순간 마음속 보석은 더욱 빛나기 시작합니다. 오늘의 공부는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내 마음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장 큰 공부입니다. 오늘 만나는 모든 인연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자비로운 마음 하나를 전하며 보석 같은 하루를 살아가겠습니다. 오늘도 근념하셨습니다. 마음의 보석을 믿으며, 평안하고 따뜻한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그저 지금 이 순간 충만합니다. 호흡으로 우린 충만해질 수 있습니다. 무겁고 괴롭고 힘든 마음은 지금 이 글을 보시는 순간, 잠시 내려놓으셔도 좋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여러분이 가장 멋진 이 세상의 주인공입니다. 감사합니다.
혜원스님
7월 8일
어느 날 장자의 아들 보적이 부처님께 묻습니다. "어떻게 하면 불국토(정토)가 청정해질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는 세 가지로 답하십니다. 첫째는 정토가 어디에 있는가를 말씀하십니다. "정토란 어떤 곳인가? 모든 중생이 사는 곳이 그대로 보살의 불국토이다." 우리는 흔히 정토를 죽어서 가는 먼 세계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 바로 보살이 수행해야 할 불국토라고 하십니다. 가정도 정토가 될 수 있고, 직장도 정토가 될 수 있으며, 시장도 정토가 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장소가 아니라 그곳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마음입니다. 둘째는 누가 정토에 태어날 수 있는가를 말씀하십니다. "정토에 태어나기 위해서는 불교 수행법인 육바라밀과 사무량심, 즉 자비·희사 등을 닦은 중생이 정토에 태어난다." 정토는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남을 이해하는 자비, 함께 기뻐하는 희심, 욕심을 내려놓는 희사, 참고 베푸는 바라밀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사람이 정토를 살아갑니다. 거창한 수행보다 가족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고, 화가 날 때 한 번 더 참으며, 어려운 이웃에게 작은 친절을 베푸는 것이 바로 바라밀 수행입니다. 셋째는 정토가 어떻게 건설되는가를 말씀하십니다. "보살은 곧은 마음을 갖고 있으므로 좋은 일을 행하고, 좋은 일을 행하므로 사려 깊은 마음을 얻는다." 모든 수행은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곧은 마음이 좋은 행동을 낳고, 좋은 행동이 깊은 마음을 만들며, 깊은 마음이 지혜를 키웁니다. 그래서 이어서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지혜가 청정해지므로 그 마음이 청정해지고, 그 마음이 청정해지므로 일체 공덕이 청정해진다." 우리는 종종 환경이 나를 괴롭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환경보다 먼저 마음을 말씀하십니다. 지혜가 맑아지면 마음이 맑아지고, 마음이 맑아지면 말이 맑아지고, 말이 맑아지면 행동이 맑아지고, 행동이 맑아지면 삶 전체가 맑아집니다. "마음이 청정하면 국토(서 있는 바로 그 자리)가 청정하다." 남편이 변해야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아내가 변해야 평화로운 것이 아닙니다. 자녀가 변해야 웃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내 마음이 청정해지면 같은 가족도 새롭게 보이고, 같은 직장도 감사한 도량이 되며, 같은 하루도 행복한 수행의 시간이 됩니다. 오늘 하루를 마치면서 자신에게 이렇게 물어보면 좋겠습니다. "오늘 나는 곧은 마음으로 살았는가?" "오늘 나는 자비로운 마음으로 사람을 대했는가?" "오늘 내 마음은 청정했는가?" 내 마음이 맑으면 세상도 맑게 보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마음이 청정하면 국토가 청정하다." 정토는 멀리 있는 세계가 아니라 청정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지금 이 자리입니다. 오늘도 근념하셨습니다. 마음을 닦아, 내가 서 있는 이곳을 정토로 만들어 가는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루를 호흡으로 쉬어가는 시간이 지금 이 순간임을 잊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보다 더 따뜻하게, 보다 더 자비롭게, 오늘을 풍요롭게 미소지으며 보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장마철입니다. 묵은 먼지와 좋지 않은 마음도 빗물에 다 보내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혜원스님
7월 7일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누군가가 와서 사지를 마디마디 자르더라도 화를 내지 말라." 이 말씀은 몸을 해쳐도 아무 감정도 느끼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분노가 결국 나 자신을 먼저 무너뜨리기 때문입니다. "화는 자신이 쌓아온 인생 업적을 훔쳐 가는 가장 큰 도둑이다."라는 이야기입니다. 도둑은 남의 것을 몰래 가져갑니다. 그런데 화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내 안에서 일어나 내가 평생 쌓아온 것을 스스로 무너뜨립니다. 어떤 사람은 평생 성실하게 살아 신뢰를 얻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오랜 수행으로 덕을 쌓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가정과 직장에서 좋은 평판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단 한 번의 화가 모든 것을 무너뜨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화를 참지 못해 던진 한마디가 평생의 우정을 끊고, 순간의 분노가 가족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기며, 감정을 이기지 못한 행동 하나가 오랫동안 쌓은 명예를 잃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계를 지키는 것만큼이나 인욕을 강조하셨습니다. 인욕은 억지로 참는 것이 아닙니다. 욕을 먹어도 '이 또한 지나가는 인연이구나' 하고 마음을 돌리는 힘입니다. 상대의 거친 말보다 내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것이 진정한 수행입니다. 우리는 흔히 "저 사람이 나를 화나게 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화는 상대가 준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받아들인 결과입니다. 같은 말을 들어도 어떤 사람은 웃으며 넘기고, 어떤 사람은 며칠 동안 분을 삭이지 못합니다. 환경보다 마음이 더 큰 원인인 것입니다. 화를 낼 때는 내가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화가 지나가고 나면 후회가 남습니다. '그때 조금만 참을 걸.' '그 말을 하지 말 걸.' '한 번 더 생각했어야 했는데.' 그래서 마음공부는 화가 난 뒤에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 화가 올라오는 그 순간 알아차리는 연습입니다. 숨을 한 번 깊이 쉬고, 말을 잠시 멈추고, 상대보다 내 마음을 먼저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 짧은 순간이 내 인생을 지켜 줍니다. 부처님께서는 욕하는 사람을 스승으로 삼으라고 하셨습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야말로 내 인욕을 키워 주는 선지식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편안한 곳에서는 수행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마음이 흔들릴 때, 그때가 수행할 기회입니다. 오늘 하루도 화가 올라오는 순간마다 이렇게 다짐해 보면 좋겠습니다. "지금 내 마음에 도둑이 들어오려 한다. 이 도둑에게 내 공덕과 행복을 빼앗기지 말자." 화를 이기는 사람이 가장 강한 사람입니다. 화를 다스리는 사람이 가장 큰 승리자입니다. 오늘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며, 화를 지혜로 바꾸고, 분노를 자비로 바꾸는 하루가 되기를 발원합니다. 오늘도 근념하셨습니다. 그동안 쌓아온 오늘의 공덕이 무너지지 않도록 잘 흘려보내주는 연습 호흡으로 하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 잘 보내줄수있습니다. 곁에 늘 관세음보살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마음으로 우리 모두 서로서로에게 따뜻한 마음 보내주었으면 합니다. 저도 여러분 덕분에 오늘도 미소지으며 힘을 냅니다. 관세음보살님!! 감사합니다.
혜원스님
7월 6일
우리는 법문을 참 많이 듣습니다. 절에 오면 스님의 설법도 듣고, 좋은 책도 읽고, 유튜브로도 불법을 접합니다. 그러나 《화엄경》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그래서 오늘 무엇을 실천했는가?" 법을 많이 들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한 가지라도 행했는가가 중요합니다. 배가 고픈 사람이 음식 사진만 바라본다고 배가 부르지 않습니다. 아무리 유명한 맛집을 알아도 한 숟가락 먹지 않으면 허기는 그대로입니다. 부처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화내지 말라.' '베풀어라.' '감사하며 살아라.' 이 말을 천 번 들어도, 막상 화가 날 때 한 번 참지 못하면 그 법은 아직 내 것이 아닙니다. 본문에서는 또 의사의 비유를 듭니다. 의사가 약 이름을 백 가지 알아도 정작 자신이 약을 먹지 않으면 병은 낫지 않습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반야심경을 외우고, 금강경을 독송하고, 경전을 많이 공부해도 탐욕은 그대로이고, 성냄은 그대로이며, 교만이 그대로라면 그 공부는 머리에만 머물러 있을 뿐 마음까지 내려오지 못한 것입니다. 불교는 지식을 늘리는 종교가 아니라 마음을 바꾸는 수행입니다. 또 가난한 사람이 남의 돈을 세는 비유가 있습니다. 은행 직원은 매일 수억 원을 만져도 그 돈이 자기 돈은 아닙니다. 우리도 남의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큰스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지만 그 말씀이 내 삶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그 법은 아직 남의 법입니다. 불법은 입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증명되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를 돌아봅시다. 오늘 나는 한 사람에게 따뜻한 말을 했는가? 화를 한 번이라도 참았는가? 감사하다는 말을 했는가? 욕심을 조금이라도 내려놓았는가? 이 작은 실천 하나가 경전 백 권 읽는 것보다 귀할 수 있습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그 선택이 쌓여 우리의 인생이 되고, 그 선택이 쌓여 우리의 업이 됩니다. 부처님은 우리의 인생을 대신 살아주실 수 없습니다. 결국 내가 선택하고, 내가 실천하고, 내가 부처가 되어 가는 것입니다. 《화엄경》 보살명난품은 마지막에 이렇게 권면합니다. "그러니 오로지 굳은 결심으로 정진에 임하라." 정진은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오늘 한 번 더 웃는 것, 오늘 한 번 더 감사하는 것, 오늘 한 번 더 참는 것, 오늘 한 번 더 절하는 것. 그 작은 실천이 모여 우리의 삶을 바꾸고, 우리의 업을 바꾸며, 마침내 부처님의 길로 이끌어 줍니다. 듣는 불자가 되지 말고 실천하는 불자가 되세요. 그 한 걸음이 바로 보살의 길이며, 화엄의 삶입니다. 오늘도 근념하셨습니다. 여러분들 덕분에 오늘도 한 마음 쉬어갑니다. 매일 참회하며 오늘을 살아갑니다. 여러분들도 이 글을 보는 순간 한 마음 한 호흡 쉬어가시길 기원드립니다. 그럼 포근한 밤 보내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혜원스님
7월 5일
오늘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신행생활의 중요함입니다. 그리고 지금 함께 하는 평온함을 만나기까지의 인연을 다시 한번더 마음에 새기셨으면 합니다. 《보살품》에는 유마거사가 마궁에 사는 천녀들에게 무진등의 법문을 설해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천녀가 묻습니다. "우리는 비록 마의 궁전에 살지만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까?" 유마거사는 이렇게 답합니다. "무진등의 법문을 배우고 실천하십시오." 무진등이란 무엇입니까? 등불 하나가 다른 등불에 불을 붙여 줍니다. 또 그 등불이 또 다른 등불을 밝힙니다. 그렇게 백천의 등불이 켜져도 처음 등불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습니다. 지혜도 그렇습니다. 자비도 그렇습니다. 신심도 그렇습니다. 나누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밝아집니다. 이것이 바로 무진등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한 가지 꼭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등불은 저절로 켜지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불을 붙여야 합니다. 그리고 한번 켠 등불도 그냥 두면 바람에 꺼질 수 있습니다. 계속 기름을 채우고, 심지를 다듬고, 바람을 막아 주어야 오래 밝게 빛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행생활도 이와 같습니다. 법등이라는 인연의 법회를 마련해 드릴 수 있습니다. 기도를 함께할 수 있습니다. 도반들과 인연도 만들어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행을 시작하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입니다. 누군가 대신 절에 와 줄 수 없고, 누군가 대신 기도해 줄 수 없고, 누군가 대신 마음을 닦아 줄 수도 없습니다. 첫 번째 등불을 켜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신행생활은 시작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법회 자리를 지키고, 새벽예불 자리를 지키고, 봉사 자리를 지키고, 도량을 지키고, 내 마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열심히 나오다가 조금 바쁘면 쉬고, 마음이 상하면 멀어지고,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신행을 놓아버린다면 등불은 쉽게 꺼지고 맙니다. 등불은 한 번 켜는 것도 중요하지만 계속 밝히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또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내가 있을 자리는 누가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드는 것입니다. 먼저 인사하는 사람이 되고, 먼저 봉사하는 사람이 되고, 먼저 법회에 오는 사람이 되고, 먼저 도반을 챙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느새 그 자리가 내 마음공부의 자리가 되고, 내 보살행의 자리가 됩니다. 자리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무진등은 한 사람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내가 꾸준히 신행하면 가족이 변합니다. 가족이 변하면 이웃이 변합니다. 이웃이 변하면 도량이 밝아집니다. 한 사람의 정성은 결코 한 사람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부처님께서는 한 사람의 보살심이 수많은 사람의 보리심을 일으킨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거창한 일을 하려고 하기보다 오늘 한 번 더 절에 오는 것, 오늘 한 번 더 합장하는 것, 오늘 한 번 더 법문을 듣는 것, 오늘 한 사람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는 것, 이 작은 실천 하나가 무진등의 시작입니다. 누군가 나를 밝혀 주기를 기다리지 말고, 내가 먼저 등불을 켜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어렵더라도 법등모임으로 시작하여 신행의 자리를 끝까지 지켜 가시기 바랍니다. 내가 지킨 그 자리에서 또 다른 한 사람의 신심이 살아나고, 또 다른 한 사람의 보리심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한 개의 등불로 천하를 비추는 길이며, 유마거사가 말씀하신 무진등의 실천입니다. 우리 모두가 스스로 등불을 밝히고, 그 등불을 꺼뜨리지 않으며, 또 다른 사람의 등불을 밝혀주는 보살이 되기를 발원합니다. 오늘도 근념하셨습니다. 날이 더워지는 7월입니다. 그리고 장마소식도 있는 요즘입니다. 벌써 이렇게 공부한지도 짧지 않은 시간을 들인것같습니다. 아직도 부족한 제 자신을 보게 됩니다. 정말 공부란 끝이 없으며, 언제 어디서든 선하게 살아야한다는 마음뿐입니다. 선한 끝은 언제나 있습니다. 베푸는 삶, 자비로운 마음과 말, 행을 하는 여러분들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지금 만나고 있는 지역법회, 봉사, 법회의 도반님들과 마음 닦아나아가는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평온함을 만드는것 또한 여러분 스스로 입니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혜원스님
7월 4일
부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유행하시다가 한 마을에 머무르셨습니다. 그곳의 중생들이 법을 청하자 부처님께서는 아주 현실적인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바르게 살지 않는 사람에게는 다섯 가지 재난이 따르고, 바르게 사는 사람에게는 다섯 가지 복이 따른다." 이 말씀은 단순히 내세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가 오늘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삶의 지침입니다. 첫째, 재산을 잃는 재난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바르게 살지 않는 사람은 결국 방탕한 생활을 하게 되고, 가진 재산마저 잃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돈이 없어서 가난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욕심을 절제하지 못하면 아무리 많이 가져도 결국 잃게 된다고 말씀합니다. 사치와 낭비, 도박과 술, 거짓된 이익은 잠시 즐거움을 줄 수 있지만 오래가지 못합니다. 반대로 정직하게 번 돈은 오래 남고, 검소한 삶은 복을 키웁니다. 그래서 수행은 절에 와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씀씀이를 바르게 하는 것도 수행입니다. 둘째, 나쁜 평판을 얻게 됩니다. 사람은 명예를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거짓말을 자주 하고, 약속을 지키지 않고, 남을 속이는 사람은 처음에는 감출 수 있어도 결국 소문이 납니다. 한 번 잃은 신뢰는 다시 얻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좋은 이름은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지만, 나쁜 이름은 하루 만에도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말 한마디, 행동 하나를 조심해야 합니다. 셋째, 성인을 만나면 부끄럽습니다. 악한 행동을 한 사람은 부처님을 만나면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누가 꾸짖어서가 아니라 자기 양심이 먼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거울 앞에서는 얼굴을 속일 수 없듯이, 맑은 사람 앞에서는 자신의 마음을 속일 수 없습니다. 반대로 바르게 사는 사람은 누구를 만나도 당당합니다. 부끄러움이 없는 삶이야말로 가장 큰 자유입니다. 넷째, 두려움 속에서 삶을 마칩니다. 부처님께서는 옳지 못한 삶을 산 사람은 마음이 혼란스럽고 두려운 가운데 죽음을 맞이한다고 하셨습니다. 죽음이 두려운 것은 죽음 자체보다 후회 때문입니다. "조금 더 착하게 살걸." "용서할 걸." "베풀 걸." 이 후회가 마음을 괴롭힙니다. 다섯째, 악한 과보를 받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바르지 못한 삶은 결국 악한 과보를 가져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불교는 인과를 믿습니다. 콩을 심으면 콩이 나고, 팥을 심으면 팥이 납니다. 오늘의 말과 행동이 내일의 행복을 만듭니다. 그래서 인생은 우연이 아니라 습관과 업의 결과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부처님께서는 답도 함께 말씀하셨습니다. 청정하게 살고, 선행을 실천하며, 정직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재산이 늘어나고, 좋은 명예를 얻으며, 누구를 만나도 당당하고, 죽음을 평안히 맞이하며, 좋은 인연과 좋은 세상으로 나아가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이 다섯 가지는 복을 받기 위한 조건이라기보다 복이 저절로 따라오는 삶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큰 수행을 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어렵게 수행하는것보다 한가지라도 지킬수있는 작은 수행부터 실천하는것이지요. 가정에서 부모를 공경하고, 직장에서 맡은 일을 성실히 하며, 남을 속이지 않고, 말을 부드럽게 하고, 작은 약속을 지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른 삶의 길입니다. 오늘도 근념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다섯 가지 재난을 경계하고, 다섯 가지 복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오늘도 오늘의 호흡에 집중하고, 한걸음 한걸음 천천히 함께 걸어가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혜원스님
7월 3일
살면서 내마음에 비교하고, 시기하는 마음이 들때가 있습니다. 이럴때 생각하기 좋은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머리는 둘이지만 몸은 하나인 새의 이야기 입니다. 한 머리는 몸을 위해 좋은 열매를 먹었지만, 다른 머리는 그것을 시기했습니다. '어차피 같은 몸인데 무엇이 문제일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시기심은 이성을 잃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다른 머리는 독이 든 열매를 먹어 상대를 해치려 했고, 그 독은 같은 몸을 타고 퍼져 둘 다 죽고 말았습니다. 이 이야기는 단지 새에 대한 우화가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의 이야기입니다. 가정에서도 그렇습니다. 부부가 서로 이기려고 하면 결국 가정의 평화가 깨집니다. 형제가 서로 시기하면 부모의 마음까지 아프게 됩니다. 직장에서도 동료의 성공을 축복하지 못하고 끌어내리려 하면 결국 조직도 손해를 보고 자신의 마음도 병들어 갑니다. 부처님께서는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삼독이라 하셨습니다. 시기심은 이 세 가지 독이 함께 자라난 모습입니다. 남이 잘되는 것을 괴로워하는 순간 내 마음은 이미 불타고 있습니다. 상대를 괴롭히기 전에 먼저 내 마음이 지옥이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남의 행복을 함께 기뻐하는 마음을 수희심이라고 합니다. 다른 사람의 복을 함께 기뻐하면 내 복도 함께 자랍니다. 촛불 하나가 다른 촛불을 밝혀도 처음 촛불이 줄어들지 않는 것처럼, 남의 행복을 축복한다고 내 행복이 줄어드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마음은 더욱 넓어지고 평안해집니다. 오늘 하루를 마무리하며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좋겠습니다. "나는 오늘 누군가를 시기하지 않았는가?" "남의 행복을 진심으로 축복해 주었는가?" "같은 몸을 가진 두 머리처럼 우리는 서로 연결된 존재임을 잊지 않았는가?" 시기심은 남을 해치는 것 같지만 결국 자신을 해칩니다. 반대로 축복하는 마음은 남을 살리고 나도 함께 살립니다. 오늘도 근념하셨습니다. 오늘은 다음의 기도문을 들숨과 날숨으로 쉬어가셨으면 좋겠습니다. 부처님, 우리 마음속의 시기와 질투를 지혜로 바꾸게 하소서. 남의 행복을 함께 기뻐하는 수희심을 키우게 하시고, 서로를 경쟁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인연으로 바라보게 하소서. 남을 살리는 말과 행동으로 결국 제 자신도 살리는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오늘도 감사합니다. 내어줄게 있어서 행복하고 평온하고 빛나는 여러분임을 기억해주세요. 언제나 정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혜원스님
7월 2일
우리는 누구나 행복하게 살기를 원합니다. 가정이 행복하기를 바라고, 사업이 잘되기를 바라며, 건강하고 오래 살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행복을 얻는 방법이 세상의 방법과는 다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은 말합니다. "남보다 앞서야 한다." "이겨야 행복하다." "내가 성공하려면 누군가는 실패해야 한다." 그러나 부처님은 전혀 다른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부처님께서 마가다국에서 교화를 하신 뒤 코살라국으로 가셨습니다. 코살라국의 왕 파세나디왕은 부처님의 명성을 듣고 기원정사로 찾아왔습니다. 왕이 물었습니다. "부처님, 저는 훌륭한 왕이 되고 싶습니다. 어떻게 해야 훌륭한 왕이 될 수 있겠습니까?" 왕은 군대를 강하게 만들고, 재물을 많이 모으고, 영토를 넓히는 방법을 들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부처님의 대답은 달랐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백성을 외아들 사랑하듯 사랑하십시오. 가난한 이를 도우십시오. 외로운 이를 위로하십시오. 그러면 굳이 고행하지 않아도 됩니다. 타인의 불행 위에 자신의 행복을 쌓지 마십시오. 그 한마디는 왕의 마음을 크게 흔들었습니다. 그 시대에는 왕이 백성의 생명을 마음대로 할 수 있었던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백성을 이용하는 왕이 아니라, 백성을 살리는 왕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결국 파세나디왕은 부처님의 깊은 가르침에 감복하여 귀의하게 됩니다. 오늘날 우리는 칼과 창으로 남을 해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마음으로는 얼마나 많은 경쟁을 하고 있습니까? 내가 승진하려면 누군가는 떨어져야 하고, 내가 이익을 얻으려면 누군가는 손해를 보고, 내가 유명해지려면 다른 사람을 깎아내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SNS에서는 남의 실패를 즐기고, 직장에서는 동료의 실수를 은근히 반기기도 합니다. 이것이 바로 타인의 불행 위에 자신의 행복을 쌓는 삶입니다. 부처님은 그것이 참된 행복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불교에서는 모든 존재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합니다. 내가 남을 속이면 결국 나 자신을 속이는 것이고, 남을 아프게 하면 결국 그 아픔은 세상을 돌아 다시 나에게 옵니다. 행복은 경쟁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자비에서 생깁니다. 남이 잘되기를 기뻐하는 마음, 함께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 그 마음이 결국 내 삶도 행복하게 만듭니다. 어느 날 파세나디왕이 왕비 말리카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물었습니다. "당신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왕비는 뜻밖에도 "제 자신입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왕도 곰곰이 생각해 보니 자신 역시 가장 사랑하는 존재는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부처님께 찾아가 여쭈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을 가장 사랑합니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을 해쳐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남도 나처럼 자기 삶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우다나』와『상윳따 니까야』에 전해지는 유명한 가르침으로, 불교 자비사상의 핵심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행복은 빼앗아서 얻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은 함께 나누어질 때 더욱 커집니다. 오늘도 근념하셨습니다. 누군가를 이기기보다 누군가를 살리는 말을 하고, 누군가를 밀어내기보다 누군가를 일으켜 세우는 사람이 된다면, 그것이 바로 부처님이 말씀하신 행복의 길입니다. 남의 불행 위에 세운 행복은 오래가지 못하지만, 자비 위에 세운 행복은 자신과 이웃을 함께 밝히는 등불이 됩니다. 오늘도 호흡으로 쉬어가는 시간입니다. 다 괜찮습니다. 내어줄것이 있어서 감사한 날입니다. 그리고 또 내어주어도 괜찮은 오늘입니다. 속상한 마음, 아픈 마음 토닥여주시길 바랍니다. 이 모든것이 공덕이 될것을 우리는 아니깐요. 오늘도 포근한 밤 예쁜 밤 보내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혜원스님
7월 1일
부처님께서는 기수급고독원에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많은 사람을 만나더라도 부모님의 은혜는 다 갚을 수 없다." 한 사람이 왼쪽 어깨에는 아버지를, 오른쪽 어깨에는 어머니를 모시고 천 년, 만 년을 다니며 옷을 입혀 드리고, 음식을 대접하고, 병이 들면 정성껏 간호한다 하더라도 부모님의 은혜를 다 갚을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부모님께 빚을 졌다는 뜻이 아니라, 우리의 생명이 얼마나 큰 사랑 위에 세워져 있는지를 잊지 말라는 가르침입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 혼자 힘으로 태어난 사람이 없습니다. 누군가 품어 주었기에 오늘의 내가 있고, 누군가 기다려 주었기에 지금 이 자리에 있습니다. 부모님의 사랑은 계산하지 않습니다. 아이가 아프면 부모가 대신 아프고, 아이가 기쁘면 부모가 함께 웃습니다. 자식은 부모의 희생을 다 기억하지 못해도 부모는 자식의 작은 미소 하나를 평생 기억합니다. 그래서 부모님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인연입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한 걸음 더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불교에서 부모란 단지 혈연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오늘의 나를 있게 해 준 모든 인연이 부모와 같은 은혜를 지닌 존재입니다. 나를 가르쳐 주신 스승, 어려울 때 손을 내밀어 준 친구, 묵묵히 함께 살아가는 배우자, 그리고 이름도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의 수고 덕분에 우리는 하루를 살아갑니다. 농부가 씨를 뿌렸기에 밥을 먹고, 환경미화원이 새벽을 열어 주기에 깨끗한 거리를 걷고, 의료진과 수많은 이들의 노력으로 건강을 지킬 수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의 삶은 은혜 아닌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은혜를 갚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요? 비싼 선물을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님께 자주 안부를 묻고,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고, 함께 식사하는 시간을 만드는 것이 효도입니다. 혹 부모님께서 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다면, 그 은혜를 기억하며 선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최고의 효도입니다. 내가 화를 줄이고, 욕심을 내려놓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부모님께 드리는 가장 큰 공양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성공한 사람은 되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성공보다 은혜를 아는 사람이 되라고 하십니다.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늘 행복하고, 은혜를 잊지 않는 사람은 어디를 가든 존경을 받으며, 보답할 줄 아는 사람은 또 다른 좋은 인연을 만나게 됩니다. 감사는 복을 부르고, 효도는 덕을 쌓으며, 은혜를 잊지 않는 마음은 우리의 삶을 가장 아름답게 만듭니다. 부모님을 공경하고 모든 인연을 귀하게 여기는 하루하루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오늘도 근념하셨습니다. 하루 가운데 온전한 나로 호흡하는 순간입니다. 들숨과 날숨으로 몸과 마음의 건강을 챙기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곁에 함께 해주는 가족들께 온힘을 다해 감사함을 전하는 따뜻한 오늘을 보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7월 불교문화순례를 갑니다. 7.12(일) 오전8시 남양주 흥국사와 봉인사로 역사순례와 기도성취가 가득한 순례를 갑니다. 희망하시는분들은 법등장님께 신청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혜원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