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 글

9월 15일

·

혜원스님

「사람마다 한 권의 경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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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경전을 책에서 찾습니다. 법당에 모셔진 경전을 펼치고, 한 글자 한 글자 읽으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웁니다. 그런데 선에서는 아주 깊은 이야기를 전합니다. 아유일권경(我有一卷經), 나에게는 한 권의 경전이 있습니다. 불인지묵성(不因紙墨成), 종이와 먹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전개무일자(展開無一字), 펼쳐보아도 한 글자도 없습니다. 상방대광명(常放大光明), 그러나 언제나 큰 광명을 발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참 신기합니다. 한 권의 경전인데 종이도 없고 글자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 경전에서는 늘 큰 빛이 나옵니다. 그렇다면 그 경전은 어디에 있을까요? 바로 우리 마음속에 있습니다. 사람마다 살아온 시간이 다르고, 만난 사람이 다르고, 기뻤던 일과 아팠던 일이 다릅니다. 그래서 사람마다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도 다릅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경험 속에는 내가 살아오면서 배운 것이 있고, 깨달은 것이 있고, 아직 깨닫지 못한 것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이 한 권의 경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우리에게 인내를 가르쳐 주고, 어떤 사람은 용서를 가르쳐 줍니다. 어떤 사람은 사랑을 가르쳐 주고, 어떤 사람은 내가 무엇을 내려놓아야 하는지를 가르쳐 줍니다. 심지어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도 내 경전의 한 페이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사람을 만날 때 그 사람의 한 장면만 보고 판단할 때가 많습니다. 저 사람은 이렇다, 저 사람은 틀렸다, 저 사람은 나와 맞지 않는다 라고 생각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한 페이지를 보고 그 사람의 경전 전체를 판단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을 깊이 바라본다는 것은 그 사람 안에 있는 경전을 읽는 일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나 자신입니다. 우리는 남의 마음은 읽으려고 하면서 정작 내 마음은 제대로 읽지 못합니다. 화가 나면 왜 화가 났는지, 서운하면 무엇 때문에 서운한지, 욕심이 생기면 무엇을 그렇게 붙잡고 있는지 살펴보지 않습니다. 그저 생각이 일어나는 대로 따라갑니다. 그러나 수행은 내 마음이라는 경전을 펼쳐보는 일입니다. 내 경전에는 글자가 없습니다. 대신 침묵 속에서 내가 나를 알아차리는 순간, 한 줄의 법문이 나타납니다. 화가 올라올 때 '아, 지금 내 마음에 화가 일어나고 있구나.' 욕심이 생길 때 '아, 내가 무엇인가를 붙잡고 있구나.' 상대가 미워질 때 '아, 내 마음이 지금 대립하고 있구나.' 이렇게 알아차리는 순간, 우리는 조금씩 자기 생각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그러면 비로소 내 안에 있는 광명이 드러납니다. 경전을 많이 읽는 것도 중요합니다. 기도하는 것도 중요하고, 법회에 참석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공부의 끝은 결국 내 마음을 밝히는 데 있습니다. 경전을 읽었는데도 마음이 더 좁아지고, 기도했는데도 사람을 더 미워하고, 불교를 공부했는데도 나와 다른 사람을 배척한다면 아직 내 경전을 제대로 펼쳐보지 못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展開無一字, 常放大光明」 펼쳐보면 한 글자도 없지만, 언제나 큰 광명을 발합니다. 우리 마음도 그렇습니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고요한 순간, 생각을 잠시 내려놓고 나 자신을 바라보는 순간, 그 마음에서 지혜와 자비의 빛이 일어납니다. 오늘 내가 겪는 기쁨도 경전의 한 페이지이고, 오늘의 아픔도 한 페이지입니다. 좋은 인연도 한 페이지이고, 힘든 인연도 한 페이지입니다. 그 모든 페이지를 지나 마침내 알게 되는 것은, 부처님은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내 마음을 밝히는 그 자리에도 계셨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마다 한 권의 경전이 있습니다. 종이와 먹으로 만들어진 경전이 아니라, 삶으로 쓰여지고 마음으로 읽어가는 경전입니다. 그곳에서 문득, 언제나 큰 광명을 발하고 있는 나 자신의 마음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오늘도 근념하셨습니다. 어디에도 거리낄 게 없는 사람만이 당당한 말을 할 수 있습니다. 당당한 말은 사람의 마음을 모으고, 밝은 곳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우리는 스스로의 삶을 부처님의 이야기처럼 맑힐 수 있습니다. 그동안 지었던 안좋은 마음 다 내려놓고 오늘의 호흡으로 평온한으로 이끄시길 바랍니다. 점점 가을 하늘이 파랗게 예뻐지는 요즘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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